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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서구는 올바른 생사관에 목마르다. 현재 한국 불교가 봉착한 이런 엄청난 문제를 풀기 위해서라 도 올바른 생사관의 정립은 절대로 중요하다. 또 다른 문제는 앞에 언급한 '마음의 종교' 수준으로는 불자를 포함한 수많은 이 시대의 대중들이 당면한 지적 혼란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대중들이 곤혹스러워하는 삶과 죽음에 관한 커다랗고 정 확한 그림을 불교가 그려줄 수 없다면, 소망스러운 목표인 '불 교=지구촌 종교'는 역부족이다. 앞에 인용한 단행본 도 삶과 죽음을 대면하는 서 구사회 엘리트들의 진지하면서도, 그러나 실체에서 거리가 없지 않아 꽤나 안타까울 수밖에 없는 노력의 한 자락을 보여주지 만, 그런 사례는 실은 부지기수이다. 이를테면 지난 해 출간돼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미 하버드 대의 심리학자 스티분 핑거의 단행본 (사이언스 북스 펴냄..
신 불교를 대망한다 앎이 짧은 필자같은 이가 불교 교학사의 새로운 장을 열지도 모르는 만현 스님의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은 애시당초 무리다. 그러나 그와 우리 동시대를 사는 사람의 느낌으로 말하건대 만 현 스님의 법문은 분명 경청할만했다. 현재 한국 불교의 내용 없는 동어반복의 와중에 감로수를 마신 듯한 느낌 또한 들었 다. 일본 인문학의 젊은 거물인 나카자와 신이치 교수(주오대)가 "일본 불교는 에도시대 들어 창조적인 힘이 멈춘다."고 비판( 133쪽)했지만, 내가 보기에 조선조 중후기 이후 한 국 불교는 자기 갱신 능력에 문제가 있어 왔다. 지난 5월 현지사를 찾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높은 산 정상 에 올라 보면 앞과 뒤의 정경이 보입니다. 산 중턱에 서서 보 면 시야가 가려 겨우 일부분만이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염불선이야말로 수행의 으뜸/붓다의메시지 존평 이런 용기는 의 가르침대로 무엇보다 계율을 존중하며, 경전을 읽고 염불을 하는 수행이 부처가 될 수 있는 길임을 확신했기 때문일 것이다. 1970년대 시절의 그 일이 놀랍다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인간 스스로의 수 행인 자력에 의존하는 것에 일정 부분 한게를 긋고 있다 는 점이다. 부처님의 가피라고 하는 타력에 의존하기 시작 한 것이다. 다음 그의 고백을 유심히 음미하기 바란다. "덕산의 30방을 흔들며, 상에 집착 없는 언어로 공을 읊 고 마치 우주의 주인이 다 된 양 착각 하며 오만을 떨었던 지난 날을 생각하면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30대 중반 서울에 올라와 총무원 상임포교사로 법상에 앉은 지 2~3년이 못돼 나 의 공부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습니다."(25쪽) 바로 이 지점에서 고유의 불교 세계관..